
영수증을 모바일로 바꾸고, 오프라인 절차를 앱으로 흡수하고, 데이터를 한데 모아 흐름을 최적화하는 일들은 ESG라는 수사가 따라붙습니다. “종이를 덜 쓰고, 이동을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모두 옳은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의 ‘가벼움’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게 거대해진 물질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보이지 않음이 우리를 자주 속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믿어온 “디지털=친환경”이라는 관념을 걷어내고, 디지털 사회를 떠받치는 세 가지 층—행위(인터페이스), 인프라(데이터센터·발전·냉각수), 네트워크(지상·해저 케이블)—를 따라 내려가 봅시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다시, 단말기의 재료학, 기업의 설계 권력, 데이터 경제의 수익 구조, 그리고 제도의 붕괴 지점을 짚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작고 견고한 실천과 제도적 변화의 방향을 사유해 보고자 합니다.

가벼운 손끝과 무거운 흔적—인터페이스의 열
스마트폰에서 사진 하나를 보내는 동안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내 기기에서 가까운 기지국으로, 거기서 네트워크 허브로, 다시 데이터센터의 서버로 이동해 저장됩니다. 이후 수신자의 요청이 올라오면 서버는 사본을 생성해 다시 네트워크를 거꾸로 타고 되돌려 보냅니다. 눈앞의 ‘즉시 전송’은, 내부에서는 여러 번의 요청·응답과 복제가 반복되는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클릭 한 번’으로 느끼지만, 그 한 번이 여섯 번 안팎의 상호작용(인터페이스)과 여러 차례 사본 생성하고 확장합니다. 그때마다 전력은 흘러가고, 서버는 열을 냅니다. “디지털은 탈(脫)물질적”이라는 관념은, 사실상 “물질을 더 멀리 떨어뜨려 보이지 않게 한다”는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단계와 인프라가 그 무게를 떠안고 있습니다.
식히고, 비축하고, 절대 끄지 않는—데이터센터의 실체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꺼지지 않습니다. 센터가 멈추면 결제·은행·행정·메신저가 동시에 흔들리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이터센터는 항상성을 위해 기본적으로 중복 전력을 깔고, 서버 랙들이 내뿜는 열을 식히기 위해 막대한 냉각수를 요구합니다. 외곽에 자리 잡은 대형 센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높은 층고, 거대한 팬, 끊임없이 울리는 전자음, 뜨거운 공기를 내뿜는 뒷면 랙들, 그리고 근처의 물길. 센터가 몰리는 지역에서는 생활용수 부족과 소음, 토지 잠식이 현실이 됩니다. ‘클라우드’라는 말은 공중에 떠 있는 무형의 감각을 주지만, 그 실체는 엄연한 건물이고 전기이며 물입니다. ‘클라우드’가 가능한 이유는, 누군가 그 건물을 지키고 그 열을 식히고, 그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지요.
광물의 계보학—한 대의 스마트폰이 품은 지구의 무게
구형 전화기에 10종 남짓이면 되었던 광물은, 오늘의 스마트폰에는 50여 종으로 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전자기기 산업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희소 금속이 많습니다. 채굴은 산지와 하천을 바꾸고, 토양과 공기를 어둡게 물들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재활용 회수율이다. 수거는 되지만 재활용 기술이 없거나, 기술은있지만 회수 체계가 부실해서, 20%에도 못 미치는 원소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탄소만 줄이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채굴에서 가공·유통·사용·폐기까지 이르는 물질 흐름 전체를 보지 않으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오래전부터 환경경제학자들이 말해온 MIPS(Material Input per Service)—‘서비스 단위당 투입 물질’—라는 관점이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휴대폰 한 대의 무게를 손에 쥐고 있는 동안, 그 뒤에서 움직인 수백·수천 배의 물질 투입이 있었다는 사실. 우리는 그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설계된 낡음—업데이트와 소유권 사이의 권력
디지털 기업은 우리에게 기기를 ‘판매’하지만, 그 내부의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는 대개 사용 허가권만을 부여합니다. 어느 날부터 업데이트가 중단되면, 멀쩡한 하드웨어도 ‘사용 불능’이 될 수 있습니다. 배터리 교체가 어렵게 설계되거나, 부품 표준이 닫혀 있으면, 합리적 수리와 연명은 더 힘들어지죠. 이에 맞서 시민들은 수리 권리(Right to Repair)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동네에서 열리는 소규모수리 워크숍,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FabLab, 모듈형 구조와 윤리적 공급망을 내세운 페어폰 같은 시도는, “빨리 버리고 새로 사라”는 명령에 대한 조용한 반격입니다. 수리는 기술을 되찾는 일이자, 폐기물의 시간을 늦추는 일입니다.
데이터가 돈이 되는 방식—무료의 경제학과 비밀의 경로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도 버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데이터가 곧 돈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인터페이스—클릭, 스크롤, 재생, 검색,가입—는 빅데이터라는 포장을 입고 광고, 추천, 입점, 입찰의 언어로 다시 팔립니다.
예컨대, 간편 가입 API를 붙인 쇼핑몰은 가입의 마찰을 줄이는 대신, 소비자의 개인정보와 행동 데이터를 넓게 습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의도한 것보다 많은 정보가 제3자에게 공유되는 구조입니다. 심지어 전동킥보드처럼 기기 수명이 짧고 수리·보험 비용이 높은 비즈니스도, MZ세대의 이동 경로 데이터가 가진 시장 가치 때문에 사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혁신’은 종종 데이터의 축적과 판매라는 냉정한 언어로 번역됩니다.
더 빠르면 더 친환경일까—리바운드의 법칙
네트워크가 3G에서 4G, 5G로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더 효율적’이 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단말기 교체, 기지국 증설, 케이블 증설, 데이터 소비 증가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효율의 이익을 소비가 상쇄하는 리바운드 효과는 교통·에너지 분야에서 수없이 관찰됩니다. 디지털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 진보가 배출을 상쇄한다”는 낙관은 지금으로서는 경험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무엇을 바꿀 것인가—작은 습관, 큰 구조
상황이 이러한데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두가지의 층위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생활의 층위입니다. 일상에서 이메일·메신저에서 이미지 자동로딩을 기본 끔으로 두고, 필요할 때만 클릭해 불러오기라던가 포털의 첫 화면을 거쳐 불필요한 로딩을 반복하지 말고, 자주 가는 사이트는 즐겨찾기로 직행하기. 불필요한 메일·대용량 첨부·중복 사진을 주기적으로 삭제하여 인터페이스 수와 저장 용량을 줄이기. 오래 쓰고, 수리하고, 모듈형·표준 부품을 선택하는 소비의 원칙을 세우기와 같은 행동들입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절약’의 차원이 아니라 디자인의 문제입니다. “한 번 덜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배후의 신호 교환과 사본 생성이 줄어들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도의 층위입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자원 사용, 예비전력·백업 구조, 열관리 방안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지역사회와 물·토지의 사회적 비용을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한다거나 그린프리미엄류의 간편 인증에 의존한 감축 서사를 재검토하고, 실측 기반의 절대 감축을 우선시하기. 수리 권리를 법·표준으로 보장하고, 제조 단계에서부터 모듈화·분해 용이성·부품 호환을 의무화하기. 전자폐기물역회수·재활용의 공공 인프라를 깔고, 수입·수출 흐름의 투명한 추적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도넛 경제학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사회적 기초선은 기술로 충족하되,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행성 한계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절제와 분배의 원리를 산업과 정책에 새겨 넣는 일입니다.
결론—기술 시민성이라는 새로운 감각
디지털 전환은 환경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해법은 아닙니다. 디지털은 결코 ‘가벼운’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기·물·광물·토지로 구성된 거대한 물질세계의 다른 얼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혁신’이라는 말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그 말이 기대는 물질적 토대와 권력 구조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이 감각을 기술 시민성이라고 부릅니다. 화면 앞의 시민이 아니라, 화면 너머의 자원과 인프라, 노동과 생태를 함께 상상하는 시민. 작게는 자동로딩을 끄고, 즐겨찾기로 직행하고, 수리하고 오래 쓰는 습관에서 시작하되, 크게는 데이터센터의 책임, 제조사의 설계 윤리, 정부의 규율과 공시 체계를 바꾸는 데까지 미음을 확장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오늘 손끝에서 인터페이스 한 번을 덜 만들어낼 때, 어딘가의 서버가 낼열 한 번이 줄어듭니다. 그 작은 감각을 서로에게 가르치고, 제도가 그 감각을 뒷받침하게 만드는 일—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환경교육이, 그리고 시민정치가 품어야 할 다음 문장이라고 믿습니다.
[참고 도서]
피트롱, G. (2023).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구하는가』 (이현주 옮김).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