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민주주의는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더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약화로 인해 민주주의의 후퇴 조짐이 점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하인리히뵐재단 동아시아사무소와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포럼(IPDF)은 2025 KDF 글로벌 포럼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민주적 연대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공동 세션을 개최했습니다.
이 세션은 이숙종 박사(IPDF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김건 의원(국민의힘), 차지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시얼리나 압둘 라시드 말레이시아 하원의원(민주행동당)이 패널로 참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국회의원들이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글은 하인리히뵐재단 동아시아사무소와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포럼이 공동 주최한 2025 KDF 글로벌 포럼의 패널 세션 "인도-태평양 지역의 민주적 연대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목소리(Parliamentarians’ Voices for Democratic Unity in the Indo-Pacific)”를 요약한 것이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
민주주의는 종종 혼란과 불확실성을 보이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으며,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계엄령 선포와 조기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DP)은 행정부와 입법부(국회) 모두에서 다수의 권한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기존에는 여당이었으나 이제 야당이 된 국민의힘(PPP)은 중대한 질문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힘(PPP)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국민, 특히 취약 계층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집단을 식별하고 우선순위를 두는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함으로써,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지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DP)의 보편적 지원 정책과는 다른 접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화된 전략은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충실한 야당(loyal opposition)’으로 기능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국민의힘은 다수 여당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면서, 국가의 주권과 미래에 더 부합하는 대안 정책과 시각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정당 간의 건설적인 논의는 건강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번영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배워왔으며,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더욱 강화해왔습니다. 이러한 가치에 기반한 공동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이전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왔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의 리더십 역할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규범 기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ASEAN이나 APEC과 같은 기존의 지역 협력 플랫폼 내에서 이러한 의제를 통합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시민참여의 강점과 도전 과제
한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평범한 시민들이 일어섰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헌법과 법률, 다양한 제도 등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2024년 12월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러한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과거와 최근의 사례 모두에서 한국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따라서 위기 상황일수록 정책 결정자들은 자신이 대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들은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점점 더 분열되고 있으며, AI 알고리즘은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편집한 언론 보도를 통해 정보를 얻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정보의 출처는 다양해졌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제 AI가 콘텐츠를 큐레이션한다는 점입니다. AI 알고리즘은 특정 정보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설계되어 있어, 사용자가 특정한 콘텐츠에 반응하면 더 극단적이거나 유사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추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정보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각기 다른 “디지털 세계” 속에 살게 됩니다. 이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우리는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 중심의 의사결정이 국경을 넘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더욱 시급합니다.
국경을 초월한 사람 중심 접근의 강력한 영향력은 국경없는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와 같은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반면, 민주주의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은 제재와 같은 정치적 수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인권이나 글로벌 보건과 같은 복합적인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유엔(UN) 기구에 기대를 걸지만, 이들 기관은 주로 국가 간 협력과 해결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은 입법 과정을 통해 국경을 넘어 협력할 수 있는 고유한 기회를 가집니다. 이들은 민주적 원칙과 사람 중심의 접근을 증진시키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한국 국회의원들은 ‘아시아-태평양 글로벌 보건 국회의원 포럼(Asia Pacific Parliamentarian Forum on Global Health)’에 참여해 인공지능(AI), 기후변화, 디지털 정책과 같은 새로운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법제 개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투명성, 시민 역량 강화, 담론: 말레이시아의 민주적 회복력
민주주의는 복잡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제도 개혁, 투명성 증진, 시민 참여 촉진을 통해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건강한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성숙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견제와 균형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국회 차원에서 수행하는 주요 메커니즘이 바로 *국회 특별위원회(Parliamentary Select Committees, PSCs)*와 *공공계정위원회(Public Accounts Committee, PAC)*입니다. PSC는 여야 의원이 함께 참여하여 정책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공간입니다. PAC는 야당이 위원장을 맡아 국가 재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감독하는 역할을 하며, 그 논의와 보고서는 정치인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민의 알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고, 말레이시아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시민과 청년의 역량 강화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말레이시아는 시민권 보호를 위한 개혁을 진행해 왔습니다. ‘탈당 금지법(Anti-Party Hopping Law)’과 ‘국회 서비스법(Parliamentary Services Act)’의 재도입은 국회의 독립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이 올바르게 대표받을 권리와 의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UNDI 18 개정안’을 통해 투표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추고, 고등학교 수준에서 정치 교육을 도입하려는 노력과 함께 청년들의 정치적 역량 강화와 대표성 확대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혁들은 선출직 공직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국내 민주주의 강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 차원에서 우수 사례를 공유하는 데에도 적극적입니다.
국경을 넘는 도전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국회의원 간 협력을 강화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현재 ASEAN 의장국으로서, ASEAN 국회 간 총회(ASEAN Inter-Parliamentary Assembly)와 ASEAN 인권 국회의원 모임(ASEAN Parliamentarians for Human Rights) 등 다양한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포럼은 국회의원들이 보다 개방적이고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모범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기술은 격차를 해소하고 글로벌 전문 지식을 국내 정책 논의에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COVID-19 팬데믹 기간 동안 정책 실행과 경제 회복에 관한 아이디어 교환을 위한 혁신적인 가상 작업 그룹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대화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도적인 포용, 지속적인 후속 조치, 그리고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접근 방식을 통해 장기적 영향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