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시민들은 시시각각 쏟아지는 전 지구적인 기후재난 뉴스를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 영향을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민주주의 실험으로서 경희대 학생들이 주도하는 '2024 기후청년의회'를 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기후 문제에 대해 배우고, 토론에 참여하고, 사회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후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날 시민들은 시시각각 쏟아지는 전 지구적인 기후재난 뉴스를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 영향을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제58차 총회에서 통합적인 단기 기후 행동의 시급성을 강조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종합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습니다. IPCC는 (1)온실가스 배출을 통한 인간 활동은 전 지구 지표온도를 1850~1900년 대비 현재(2011~2020년) 1.1℃로 상승시켰고, (2)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온난화가 심화되어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1.5℃에 도달할 것이고, (3)심층적이고 지속적인 배출량 감축을 달성하고 모두에게 살기 좋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문 및 시스템에 걸친 신속한 전환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실은 IPCC의 전망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5도 상승했다고 발표하며, 파리기후협정의 제한 목표인 1.5도를 처음으로 초과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1월 10일 보도자료에서 지난 2024년이 근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보인 해로 확정했습니다.
기후위기는 미래가 아닌 당면한 위기이고, 그 영향은 매우 심각합니다. 특히 기후위기에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은 저개발국가와 취약계층은 기후위기에 대한 적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게다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들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 상실 등 고통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IPCC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기후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인간 활동에 의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시스템에 종지부를 찍고, 재생가능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정의롭게 전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왜 채택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와 법치 국가의 성격이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선출된 정부가 시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도달하려 한 목적을 배신하는 역설적인 상황(포스트 민주주의)에 직면한 탓입니다. 기후정책의 지체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퇴행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위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기성 정치의 한계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규정하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실천적 시도로 기후시민의회를 주목하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기후시민회의는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학습하고 심의하며,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숙의적 공론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침 제가 경희대학교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후위기와 직접행동>이라는 교양과목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영향,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학습하고, 학생 주도의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직접행동을 통해 사회변화를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2024 기후청년회의>라고 이름 짓고, 학생들에게 커리큘럼을 제시하여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후청년의회를 구상하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한국의 정책 대응은 실망스럽게도 매우 느립니다. 2021년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219개국 중 9위였습니다. 또한 한국은 1990년 이후 누적 배출량 15위이자 OECD 국가 중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5위,
1인당 배출량 6위입니다.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국제환경연대단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는 대한민국을 ‘오늘의 화석상’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OECD 국가들의 석유‧가스 보조금 중단 합의를 지연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또한 한국
이 국제사회에서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지만, 화석연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퇴행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기후악당 국가로 비난받고 있지만, 한국 시민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24년 갤럽의 기후변화 인식에 관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를 인간 활동의 결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핀란드에 이어 39개국 중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시민사회에서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특히 청년기후긴급행동과 같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기후 운동이 활발합니다. 예를 들어,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영유아, 청소년, 시민 등 다양한 청구인이 제기한 기후소송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2030년 이후 구체적인 감축량을 정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탄소중립기본법의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합니다. 이번 헌법소원은 아시아 최초의 판결, 세계 최연소 기후소송으로도 알려져 큰 화제가 됐습니다. ‘딱따구리’라는 태명을 가진 태아가 아기 기후소송단의 대표 청구인으로 등록했기 때문입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되거나 임명된 정치인과 정부 관료가 시민을 배반하는 시대에 어떻게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내용과 방법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기존 체제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대체하고 긴장을 일으키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내용과 방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탈성장과 대안연구소의 김현우(2024)는 전문 정치인과 관료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정치를 개혁하는 것을 넘어서는, 추첨식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로 관심을 확장할 것을 제안합니다.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와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회의(Citizens’ assembly) 실험도 이러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영국의 멸종반란(XR UK)은 기성 정치와 달리 시민의회는 (1)전문가, 이해관계자, 피해자들로부터
균형 잡힌 정보를 듣고, 소그룹 토론을 통해 공동의 결정에 도달한다는 책임성을 갖고, (2)성원은 추첨제 등을 통해 임의로 소집되며 과정은 투명하고, (3)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고, (4)다양한 계층(성별, 연령, 인종 등)의 사람들이 참여해 다양성을 반영하고 공정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한편, 저는 2021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 개설한 교양과목 <기후위기와 직접행동>을 3년간 운영하면서 교양교육의 목표인 자유롭고 창조적인 탐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끔 학생들의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독일의 유명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참고했습니다. 이 합의는 (1)강제성 금지, (2)논쟁성의 유지, (3)정치적 행동 역량 강화 등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강좌 개설 초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원격 수업과 대형 강좌로 인해 토론이 제한되었고, 학교 밖 현장과의 연계가 부족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직접행동으로 이어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기후시민의회의 문제의식과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적용하여, 마침 위헌 판결을 받은 탄소중립기본법을 중심으로 교수합습방법론을 설계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후위기와 직접행동 : 2024 기후청년의회>(이하 기후청년의회)를 통해 학생들은 (1)기후위기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함으로써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기후위기 문해력), (2)문제를 정의하고 갈등을 분석함으로써 복잡성의 관점에서 사회문제의 쟁점을 교실에서 재현하고(논쟁의 재현), (3)독서 토론과 전문가 특강, 현장 간담회를 통해 기후위기 직접행동 계획을 수립하고(계획의 수립), (4)실천 과정을 지원하여 교육 효과성을 높이고자 했습니다(정치적 행동 역량의 강화). 무엇보다도 학교 교실 밖에서 정치 및 시민사회와 지속적으로 연결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탄소중립기본법을 중심으로 한국의 기후정책과 제도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하면서 문제점을 도출하고, 대안을 만들어 직접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을 대학 수업과 연계하는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제 2화에서는,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기후변화에 맞서는 구체적 수업과 활동 계획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