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하인리히 뵐 재단의 린다 슈나이더(Linda Schneider, 베를린 본부), 리아네 샬라텍(Liane Schalatek, 북미 사무소), 마르셀루 몬테네그루(Marcelo Montenegro, 브라질 사무소), 레기네 쇠넨베르크(Regine Schönenberg, 브라질 사무소)가 8월 8일에 작성한 분석(COP30 Without the US: Climate Negotiations in Brazil Under Pressure)을 노건우(동아시아 사무소)가 번역, 재구성한 것이다
1. 미국: 빠질게
브라질에서 열리는 서른 번째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Conference of the Parties)는 그저 또 한 번 냉소하고 넘길 국제 행사가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권위주의적 정부들이 의장국을 맡으면서 COP은 배제와 교착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새로운 기후목표의 제출과 함께 환기의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는 과연, 벨렝의 회의장에서 기후 다자주의의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협상의 중심축인 기후재정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UNFCCC 사무국부터가 재정난과 정당성의 위기로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에 있어 가장 큰 역사적 책임을 지닌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COP에 불참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협정 탈퇴는 내년 1월에야 발효되지만, 미국은 사전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자취를 감췄다.
이러한 미국의 결정은 소극적 결석이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 앞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겠다”라는 적극적 선언처럼 보인다. 동시에 그 빈자리는 다른 목소리를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바로 국제법이 권고한 기후정의의 새로운 규범이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이 빠진 공백을 누가 어떤 원칙으로 메울 것인가? 벨렝의 회의장 위에, 그간 해결되지 못했던 책임과 배상에 관한 물음들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2. 국제법: 누구 맘대로
2025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모든 국가는 파리협정에 가입했든 하지 않았든 기후를 보호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를 정치적, 도덕적 호소에서 국제법의 규범으로 끌어올린 순간이었다.
이 판결은 COP30의 협상 지형에 직접적 파장을 미친다. 각국은 2035년을 목표로 하는 국가결정기여(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더욱 야심차게 제출해야 하고, 그 개별 목표의 총합은 파리협정의 ‘1.5도 목표’에 가까워야 한다. 하지만 1.5도에 부합하는 경로와 현 감축목표 사이의 거대한 격차는 좁히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수의 남반구(Global South) 국가들은 그들의 NDC 수준을 북반구(Global North)의 재정 지원 여부와 연계하여 제시하고 있다.
결국, 쟁점은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의 해석이다. ICJ의 판결은 누적 배출량이 많고 발전 수준이 높은 국가가 이에 상응하는 감축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경우, 국제법 위반으로 책임을 추궁당하고 배상까지 요구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정이 여러모로 부족한 상황에서, 국경 없는 법적 소송이라는 새로운 통로가 열린 것이다.
3. 남반구: 민간 투자 말고 공적 재정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COP29는 연간 3,000억 달러 규모의 신기후재정목표(NCQG, 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에 합의하며 일견 성과를 내는 듯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망스럽다. 금액은 턱없이 부족하고, 약속된 재원 조달 방식은 모호하다. 뒤이어 발표된 ‘바쿠-벨렝 로드맵’은 2035년까지 1조 3천억 달러를 동원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민간 자금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 실효성이 의심된다.
이에 남반구 국가들은 재차 강조한다. 선진국들이 내야 할 것은 민간 투자가 아니라 공적 재정이라는 것을. 사실, 이는 파리협정 9조 1항(“선진국 당사자는 협약상의 자신의 기존 의무의 연속선상에서 완화 및 적응 모두와 관련하여 개발도상국 당사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재원을 제공한다”)에 명시된, 명백한 조약상의 의무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포괄적 담론 뒤에 숨어 이 의무를 회피해왔다.
남반구가 원하는 것은 ‘얼마’보다 ‘어떻게’다. 대출이 아니라 보조금이어야 하며, 지원은 공중에 흩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바닥까지 닿아야 한다. 인권, 성평등, 취약계층 보호와 같은 질적 기준이 담보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후재정은 새로운 빚의 덫이 될 뿐이다.
결국 이 논쟁의 바탕에도 단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배상할 것인가? 남반구는 그 책임을 북반구에 되묻고 있다.
4. 북반구: 국제감축분 딱 한 입만
COP29에서 채택된 탄소시장 규칙은 새로운 책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연합은 204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 탄소시장 인증서를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자국 내에서 직접 배출을 줄이기보다, 해외에서 이뤄진 감축분을 사들여 장부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자국 내에서 최대한의 감축을 해내야 할 당사자들이 그 부담을 다른 지역으로 전가하는 셈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약상의 근거는 파리협정 6조 2항이다. 이는 국가 간에 이산화탄소 감축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환경적 건전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 그러나 아직 투명성 체계도, 이중계산 방지 장치도 불완전하다. 결국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증서의 거래는 감축의 실질적 효과보다 책임 회피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을 통해 발생할 거래 수익이 기후재정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래 기후재정은 선진국의 책임에 기반한 배상 성격을 띠어야 하며, 무엇보다 개발도상국의 빚을 늘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탄소시장이 이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 선진국은 공적 재정 의무를 축소하고 민간 중심의 시장 논리로 책임을 희석할 수 있다.
즉, 탄소시장은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는 장치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책임을 피하려는 우회로로 악용될 위험이 다분하다. 북반구가 선택한 길은 진정한 책임 분담이 아니라, 장부상의 꼼수일 수 있다.
5. 의장단: 감축은 빨간불, 재정은 노란불, 정의로운 전환은…
이번 COP30에서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새롭게 제출될 각국의 2035 NDC의 수준과 감축목표 간의 격차(ambition gap)다. UNFCCC 사무국은 COP30 직전 종합 보고서를 발표해, 새로운 NDC들이 다시금 1.5도 경로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예정이다.
기후적응은 브라질 의장국의 우선 과제 중 하나다. 국제적응목표(GGA, Global Goal on Adaptation)를 구체화하고,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적응 재정을 세 배로 확대하자는 논의가 테이블에 오른다. 그러나 여기서도 질적 문제가 남는다. 보조금 형태의 공적 재정이 아니라면, 이미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대출 기반 재정으로 더 깊은 불안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6월 독일 본에서 열린 사전 협상에서 가장 큰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된 것은 정의로운 전환 작업계획(JTWP, Just Transition Work Programme)이다. 시민사회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된 초안은 노동권 보호를 넘어 인권, 성평등, 생태계 보호를 포괄하고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포용적 논의 구조의 설계도 고려되어 있다.
COP30은 감축 목표에 있어서는 난관에 부딪히고, 재정의 질을 둘러싼 논쟁은 이어지며, 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조심스러운 낙관이 교차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6. 시민사회: 지금 당장 기후정의
손실과 피해 대응기금(FRLD, Fund for Loss and Damage)은 COP28에서 출범했지만, 통장 잔고는 여전히 비어있는 상황이다. 선진국들이 약속을 미루는 사이, 국제 시민사회는 #FillTheFund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는 더 많은 약속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책임 있는 배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사회의 의제는 재정만이 아니다. COP30은 인권과 성평등 의제에 역풍이 거세게 불어오는 시기에 열린다. 무급 돌봄 노동의 인정, 교차성과 젠더 다양성을 반영한 용어 사용은 일부 정부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그럼에도 벨렝에서 새로운 ‘성평등 행동계획(GAP, Gender Action Plan)’이 채택된다면, 기후협상이 ‘환경’ 이상의 보편적 권리와 대표성을 다루는 공간임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협상장 바깥, 벨렝의 거리와 대학에서 또 다른 무대가 열린다. 바로 국제 시민사회가 주최하는 ‘민중회의(Cúpula dos Povos)’다. 화석연료 산업의 고질적인 로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 치솟은 숙박비와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도, 민중회의는 COP30을 권력자들의 외교무대가 아닌 책임과 배상, 정의를 요구하는 운동의 장으로 바꾸려 한다.
그들의 구호는 명료하다. “쥬스치싸 끌리마치카 쟈(Justiça climática j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