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처음 참가한 것은 2000년의 COP6(헤이그)였다. 이후에도 COP와 여러모로 관계를 이어왔고, 올해 11월 COP30에는 스무번째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간 협상관으로서 두 차례 협상에 관여했으며, 특히 2008~2011년에는 경제산업성의 수석협상관으로서 참여했다. 이 글은 필자의 경험에 기초하여,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엮은 것이다.
교토의정서에서 파리협정으로
1992년 온난화 방지의 첫 국제적 대응으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었지만, 부속서1국가(선진국)의 온실가스배출량을 2000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안정화한다는 목표 달성은 요원해 보였다. 국제사회는 더 강력한 기후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1997년에 체결된 것이 교토의정서였다.
하지만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게만 감축 의무를 부과하였고, 개발도상국에게는 일절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체계였다.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이라는 기후변화협약의 원칙에 기반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세계적인 문제인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시스템으로서는 실효성이 결여된 것이었다. 게다가 교토의정서에 의해 부과된 선진국의 감축목표, 즉 제1차 공약기간 동안(2008~2012년) 평균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일본은 ▲6%, 미국은 ▲7%, EU는 ▲8% 감축한다는 목표는 겉보기와 다르게 EU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이었다. 영국의 석탄에서 천연가스로의 전환, 동서독의 통일 등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무관한 요인에 의해, EU의 배출량은 교토의정서 체결 시에 이미 8%를 달성했다.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은 부시 정부가 교토의정서를 이탈해버렸다. 한편, 이미 철저히 에너지절약을 추진해오던 일본에게 6% 국내 감축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1조엔이 넘는 해외크레딧을 조달해야 했다. 이는 일본의 외교적 패배이기도 했기에, 2000년 처음으로 기후협상에 참여했던 필자는 교토의정서의 불합리함에 통감했다.
기후협상은 선진국 대 개발도상국의 뿌리 깊은 대립의 역사다. 필자가 수석협상관으로서 재차 협상의 최전선에 임했던 2008~2011년에는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협상관들이 ‘선진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교토의정서에 의한 법적 구속력 있는 목표를 부담하며, 우리들 개도국은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감축 노력에 머물러야 한다’고 이분법적인 주장을 펼쳤다. 2000년 이후 중국을 필두로 신흥국의 배출 증가가 현저해진 가운데, 선진국에만 의무를 지우고 개발도상국을 구속하지 않는 교토의정서의 체계로는 기후변화 방지에 유의미한 구실을 하지 못함이 점점 분명해졌다.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에 입각해, 선진국의 배출량 감축, 개도국의 GDP대비 배출량 감축 등 목표와 내용을 차등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선진국도 개발도상국도 공통의 틀 안에서 감축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의 주장이었다.
필자는 수석협상관의 일원으로서 ‘일본은 어떠한 상황, 조건 하에서도 교토의정서 제2 공약기간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COP16(칸쿤)에서 표명했다. 당시 COP에서는 교토의정서 제2공약기간의 설정에 관한 협상과 기후변화협약 하에서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틀에 관한 협상이 병행되고 있었다. 일본은 전자인 교토의정서 제2공약기간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미국,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자율목표를 설정하고, 진행상황을 보고한 후 검토를 받는다는 내용의 ‘칸쿤합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칸쿤합의와 교토의정서의 큰 차이는 ①모든 국가가 목표를 설정할 것, ②목표는 각국이 자율적으로 설정하며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 ③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처벌적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향식 사고방식은 미국과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 냈고, 2015년 성립된 파리협정도 칸쿤합의의 ‘서약과 검토(pledge and review)’ 방식을 준용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에서 힘든 경험을 했던 필자는 ‘드디어 모두가 참여하는 형태의 틀이 갖춰졌다’라고 깊은 감회에 잠겼던 기억이 있다.
환경근본주의의 대두와 파리협정의 변질
파리협정의 상향식 ‘서약과 검토’는 모든 국가가 참여했을 뿐 아니라 상당히 유익한 것이었지만, 환경파 사람들은 1.5~2℃ 이내라는 하향식 온도 목표를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1.5℃ 특별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국제연합(UN), EU, 환경단체 등은 ‘각국은 2050년 탄소중립에 전념하며, 이를 위해 2030년 목표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리협정은 하향식과 상향식의 절묘한 밸런스 위에 성립되었다. 그러나 최근 COP의 논의는 하향식 1.5℃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2050년 넷제로가 사실상 기본사항이 되었고, 각국의 사정에 기반해 목표를 설정한다는 상향식 접근은 뒤로 밀려나 버렸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COP26의 최종국면에서 크게 쟁점이 되었던 것은 석탄화력발전의 페이즈아웃(단계적 폐지) 문제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은 환경단체의 관점에서 적대시되어 왔고, 의장국인 영국은 글래스고 기후협정의 최종안에 석탄화력발전의 페이즈아웃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인도가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마지막에는 ‘페이즈아웃(단계적 폐지)’을 ‘페이즈다운(단계적 감축)’으로 교체하다. 유럽 국가,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될 위험에 처한 도서국가들은 이러한 톤다운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절대시한다면, 산술적으로 볼 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 나아가 모든 화석연료의 페이즈아웃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이런 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탑다운 방식의 온도목표를 최우선시하는 선진국, 자국의 사정을 이유로 이에 반발하는 개발도상국의 구도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전지구적 이행점검(GST)과 새로운 기후재원목표
최근의 기후협상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던 건 2023년 COP28(두바이)에서 있었던 전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 GST)이다. GST는 파리협정의 목표달성을 위한 국제적 대응의 진행상황을 평가하는 틀로, 향후 목표 설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도 쟁점은 화석연료의 페이즈아웃(단계적 폐지)를 합의문에 포함할 지 여부였다. 유럽 각국, 도서국가, NGO 등은 1.5℃ 목표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의 퇴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산유국, 러시아 등은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탄소배출 감축일 뿐 특정 에너지원을 표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최종적으로는 화석연료의 ‘페이즈아웃’이 아니라, ‘이행(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2025년 전세계 배출정점(피크아웃), 2035년 전세계 60% 감축 등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 포함된 수치도 언급되었지만, ‘인식’의 대상일 뿐이지 중국과 인도가 2035년 60% 감축에 부합하는 감축목표를 낼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GST에서는 재생에너지 3배, 에너지 사용량 감소 2배 등과 함께 원자력, CCUS, 이행연료(천연가스)의 역할도 명확히 자리잡았다. 원자력, CCUS가 COP의 결정문에서 긍정적으로 다뤄진 것은 처음이다. 원자력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변화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에너지 정세가 불안정해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GST에는 1.5℃에 부합하는 감축 목표치나 야심찬 에너지전환 목표도 포함되었지만, 개발도상국이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 합의문에는 2050년 전지구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연간 4~5조 달러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필요하다는 수치도 담겼다. 선진국은 매번 COP에서 더 높은 목표를 주장하지만, 이는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거액의 청구서가 되어 선진국에게 되돌아온다.
그 ‘청구서’가 논의된 것이 2024년의 COP29(바쿠)였다. COP29의 최대 초점은 2025년 이후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새로운 재원목표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연간 최소 1.3조 달러를 지원할 것, 1.3조 달러는 양허성 공적 자금일 것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선진국은 재원의 출처를 선진국뿐 아니라 부담능력이 있는 개발도상국(중국, 산유국 등)으로 확대할 것, 민간을 포함한 다양한 재원으로부터 조달할 것 등을 주장했고, 가장 중요한 재원 조성 목표에 대해서는 2000억 달러를 제시해 개발도상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역으로 선진국은 새로운 기후재원 목표 합의와 패키지로 COP28의 GST에 포함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야심찬 목표의 강화 등의 후속조치, 완화행동의 강화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이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했다.
결국 새로운 재원목표는 3000억 달러로 결정되었지만, 인도 등 일부 개발도상국은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선진국이 중시하던 완화행동 강화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COP29는 선진국, 개발도상국 모두에게 강한 불만을 남긴 씁쓸한 결말이 되었다. 더구나 3000억 달러라는 숫자의 실현가능성도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자금 공여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호언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일본이나 EU가 미국의 몫을 대신 떠맡을 수도 없다. 선진국으로부터 재원이 조성되지 않으면 개발도상국의 NDC 의 목표 상향도 기대할 수 없다.
앞으로의 전망
이처럼 세계가 한 마음으로 탈탄소화, 1.5℃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파리협정의 상향식 공조와 강제력 없는 체계로 인해 1.5℃ 목표의 실현이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파리협정을 교토의정서처럼 목표 미달 시 벌칙을 부과하는 강제력 있는 틀로 개정한다 해도,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이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목표 달성이 법적 의무가 된다고 해도, 각국은 벌칙을 피하기 위해 확실히 달성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목표밖에 내놓지 않을 것이다. 구조가 불완전하더라도, 파리협정으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최근의 기후변화 논의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를 폐지하고 재생에너지를 3배 증가시키는 등 특정한 에너지전환의 상이 권장되고 있지만, 이러한 논의는 아시아 중심의 신흥국의 에너지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1.5℃ 목표 달성을 위해 아직 쓸 수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라는 주장은 앞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다. 대니엘 예긴의 말처럼 에너지전환의 추진력은 경제성과 기술혁신이며, 고비용 에너지전환은 정치적·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에너지비용 상승에 대한 부담 의사는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낮기 때문이다. 또한 재생에너지 기술에 필수적인 주요 광물의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의존하고 있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석유의 중동의존, 가스의 러시아 의존과는 다른 의미에서 지정학적인 리스크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필자는 ‘트럼프 정부의 파리협정 이탈로 인해 세계의 흐름이 탈탄소화 역행으로 바뀌었다’는 일각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IPCC보고서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는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경종에는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기후변화 대응만이 아니며,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의 17개 과제들의 우선순위 역시 선진국과 신흥국·개발도상국 간에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1.5℃ 목표를 달성할 정도로 탈탄소화가 속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탈탄소화 과제는 거의 모든 국가의 정책과제에 포함되어 왔고 앞으로도 착실히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관념적인 탈탄소화론이 아닌, 지금까지의 성과를 전부 부정하는 탈탄소화 역행론도 아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식적인 탄소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