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 30년을 돌아보는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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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성의 어떤 요리사가 말했듯, ‘의도’는 중요하다. 한 접시 위에서도 그럴진대 국가 간 외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곳에서 의도 없는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으며, 장소 하나하나에도 상징적 무게가 실린다. 1995년 제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가 열린 베를린도 예외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거대한 장벽이 서 있던 바로 그 도시였기 때문에. 냉전은 끝났고, 지구인들은 잠시나마 평화라는 개념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치고받을 이념적 경쟁자가 사라진 듯 보이자, 그들은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울렸으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숙적을 등잔 밑에서 재발견했다. 그건 화석연료를 태울수록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본격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한 지구였다.

 

1995년 3월 말, 117개 당사국과 53개 참관국이 베를린에 모였다. 역사적 첫 협상의 중심에는 두 개의 티(t)가 있었다. 목표를 뜻하는 타깃(target), 그리고 시한을 뜻하는 타임테이블(timetable). 쟁점은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정량적 목표와 시한으로 적어 넣을 수 있는가였다. 군소도서국연합(AOSIS)은 앞서 제출한 의정서 초안에서 기후변화에 더 큰 책임이 있고 대응할 역량도 갖춘 선진국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까지 1990년 대비 20%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바닷물은 이미 열을 머금고 팽창하기 시작했고, 곧 생계와 국토가 위협받을 것이 자명했기에. AOSIS 밖에서는 노르웨이와, 다소 의외로, 한국이 이 제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과 호주는 제안된 목표와 시한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산유국들 역시 제동을 걸었다.

 

        교착을 푼 것은 인도가 주도한, 산유국을 제외한 72개 개발도상국의 중재안이었다. 마지막 합의를 조율하는 자리에는 정작 AOSIS 대표들이 없었다. 그럼에도 AOSIS는 최종 합의를 막지 않았다. 구체적인 감축률은 빠졌지만, 1997년까지 의정서나 다른 법적 문서를 마련하기 위한 협상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베를린 위임 사항’이 채택됐다. 요지는 이랬다. 선진국의 기존 감축 약속은 충분하지 않으니 더 강한 약속을 만들자. 그러나 개발도상국에는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지 말자. 앞 문장은 훗날 교토의정서의 감축 목표로 이어졌고, 뒤 문장은 이후 오랫동안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갈등을 규정하게 된다. 당시 회의를 요약한 기록은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협약 당사국들을 가르는 벽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라고 적었다.

 

31년이 흘렀다. 그때 AOSIS의 제안에 반대했던 호주는 튀르키예가 개최하는 이번 COP31에서 협상 의장을 맡고, 심지어 태평양의 섬나라들과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어떤 벽을 넘었고, 어떤 새로운 벽 앞에 서 있는가.